앙코르와트로 들어가는 새벽의 숲길은 늘 상쾌하고 고요했다.
2018년, 개도국 지원사업으로 시엠립에 수상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던 때였다. 나는 새벽마다 그 길을 걸었다. 해가 떠오르기 전 앙코르와트로 가는 숲속의 공기는 놀랄 만큼 맑았다. 천 년 가까이 버텨 온 돌 사이에서 숨을 깊이 들이쉬곤 했다.
문제는 돌아오는 길이었다. 출근 시간이 되자 도로는 오토바이로 가득 찼다. 수많은 엔진이 한꺼번에 내뿜는 매연 속에서 나는 숨을 참으며 걸었다. 불과 몇 시간 전과 같은 도시, 같은 아침이었다. 그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일하러 가는 길이었다. 생계를 멈추라고 할 수 없다면 바꿔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타고 가는 것이었다.
그날 산책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 하지만 그 장면이 그렇게 크게 다가온 데에는 훨씬 오래된 이유가 있었다.
지금이 가장 힘들다
김성우 베리워즈 대표가 기후기술을 통한 새로운 경제영토 개척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베리워즈)
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솔직히 말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 사업을 시작한 뒤 가장 힘든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지금이라고 답한다.
우리는 수많은 고비를 넘어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감축사업 승인을 받아냈다. 그런데 승인이 곧 투자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투자 유치를 위해 뛰고 있지만 자금이 언제 들어올지 날짜를 박을 수는 없다. 내일을 설명해야 하는 대표가 오늘의 질문에도 답해야 하는 시간이다.
얼마 전 나는 임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힘들 때일수록 다시 힘을 내자고. 고객이 우리 제품을 선택하게 만들고, 쓰고 나서 좋아하게 만들자고. 우리의 어려움보다 먼저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오늘 아침 캄보디아 어딘가에서 우리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 그 사람의 출근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는가. 답은 꽤 먼 곳에서 시작된다.
숫자 뒤에 사람이 있었다
대학원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할 때 내 논문 주제는 포스코 자동차용 강판의 전과정평가(Life Cycle Assessment·LCA)였다. 철광석이 강판이 되고, 자동차가 되어 달리고, 결국 폐차되기까지 그 강판 하나가 환경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추적하는 일이었다. 눈앞의 물건 하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앞과 뒤를 모두 봐야 한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첫 회사를 창업한 계기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의 제품 전과정평가 정보를 만드는 일이었다. 나는 밤낮으로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며 환경문제를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했다.
그 무렵 반도체 산업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투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원인을 판단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보였다. 무엇이 쓰였고, 어떤 공정을 거쳤고, 무엇이 관리되고 있었는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면 아무도 답할 수 없다. 노동자도, 주민도,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때부터 내게 숫자는 더 이상 숫자가 아니었다. 데이터를 관리하는 일은 사람을 지키는 일이었고, 기업이 책임질 수 있게 만드는 일이었다.
목표를 현장까지 내려보내는 사람
그 뒤로 내 일은 기업과 국가가 온실가스를 정확하게 산정하고 실제로 줄일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만드는 쪽으로 넓어졌다. 배출량을 산정하고, 감축실적을 등록하고 평가하는 체계를 설계하는 일에 참여했다.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기업에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부여하고 이행을 점검하던 때, 나는 그 절차와 실행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었다. 많은 사람과 기관이 함께 만든 제도였다. 그 안에서 내가 맡은 몫은 제도가 정부와 기업 양쪽에서 실제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었다.
목표를 숫자로 정하는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숫자가 실제 공장의 설비와 공정까지 내려가 확인되게 만드는 것이 내 일이었다. 기업마다 공정이 달랐고, 같은 목표라도 줄이는 방법은 달라야 했다.
그 전문성을 들고 해외로 나가 감축사업과 재생에너지 사업을 개발했다. 한국의 방법을 그대로 옮겨 심을 수는 없었다. 그 나라의 제도와 산업,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작동해야 했다.
첫 회사를 엑싯(EXIT)한 뒤 베리워즈를 세웠다. 데이터로 기업의 현실을 분석하고, 실제로 갈 수 있는 탄소중립의 길을 찾는 컨설팅을 하고 싶었다. 그 기술력과 방향을 인정받아 국내 대기업의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100% 사용(RE100) 로드맵을 수립하는 일을 맡게 됐다.
글로벌 기업들과의 만남에서 발견한 질문
그 프로젝트에서 우리 고객사는 다른 글로벌 기업들이 기후변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우리는 일면식도 없는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에 무작정 만남을 제안하는 콜드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그들도 한국의 대기업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서로가 서로를 궁금해한 덕분에 미팅은 놀랄 만큼 빠르게 성사됐다.
나는 그 자리에 직접 가지 못했다. 대신 돌아온 회의록을 읽고 또 읽었다. 읽을수록 그들의 생각이 선명해졌다. 그들은 기후변화를 규제가 아니라 기회로 보고 있었다.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더 키우고 더 오래가게 만드는 수단이었다.
내가 그동안 만나 온 세상은 달랐다. 규제에 대응하는 회사는 많았다. 실제로 배출을 줄이면서 돈을 버는 사업은 드물었다. 탄소중립은 보고서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줄일수록 돈이 되는 사업모델이 늘어나야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불편한 질문 하나가 남았다. 평생 남에게 온실가스 줄이는 방법을 설계해 준 나는, 직접 줄여 본 적이 있었던가. 그렇다면 탄소중립 사업모델이 더 많아져야 하는 세상에서,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다시, 그 아침
캄보디아와의 인연은 한국에너지공단이 그곳을 중점협력국으로 지정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시엠립의 그 아침을 만났다. 들어갈 때의 맑은 공기와 돌아올 때의 매연. 대학원에서 배운 전과정평가의 눈으로 보면 답은 분명했다. 사람들의 이동 하나가 도시의 공기를 바꾸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이동을 바꾸면 된다.
캄보디아에서 오토바이는 단순한 탈것이 아니다. 출근하고, 장사하고,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일상 그 자체다. 탄소중립이 바로 그 일상 안에서 이뤄진다면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다. 기후기술이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생활을 더 낫게 만드는 것이라는 경험. 그 경험이 쌓이면 다음 기후기술이 들어올 문도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첫 번째 사업모델로 전기 오토바이를 택했다.
베리워즈의 전기 오토바이 이용자가 배터리 교환소에서 배터리를 교체하고 있다. (사진=베리워즈)
처음부터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
처음엔 오토바이와 충전기를 직접 만들 생각은 없었다. 나는 제조공장에서 나온 데이터를 분석하고, 어떻게 운영해야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지 조언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파트너 기업에서 차량과 충전기를 공급받고, 우리는 그 위에서 감축량을 산정하는 플랫폼을 운영하려 했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일에서 출발하는 계획이었다.
차량을 공급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차량으로 줄인 온실가스를 대한민국의 감축실적으로 연결하는 사업 구조까지 함께 맞춰 줄 곳이 필요했다. 여러 우리나라 전기 오토바이 제조 기업들을 만나봤지만 캄보디아에서 그 구상을 함께 실행할 파트너가 없었다.
결국 우리가 직접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두려움이 너무 많았다. 오토바이를 만들어 본 적도 없고, 제대로 타 본 적도 없었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도 몰랐다. 늘 다른 기업을 분석해 온 내가, 이제 내 공장을 처음부터 세워야 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우리 회사 최고기술책임자(CTO)와 함께 부품을 만들어 줄 공급사들을 하나씩 찾아 나섰다. 오토바이와 충전기를 직접 설계하고 제작했고, 1년 만에 시제품을 만들었다. 감축량을 계산할 플랫폼을 만들려던 회사가, 그 감축을 일으킬 제품부터 만드는 회사가 되어 있었다.
오토바이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제품을 만드는 것과 사람들이 매일 쓰게 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전기 오토바이는 휘발유 오토바이보다 운영비가 쌌지만, 배터리 때문에 처음 살 때 값이 비쌌다. 그래서 시장에는 저품질 제품이 팔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몇 시간씩 걸리는 충전에 지쳐 있었다.
차량만 팔아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했다. 충전 시간을 없애기 위해 배터리를 갈아 끼우는 교환 방식을 도입했다. 고장 나면 고쳐 줄 서비스센터를 세웠다. 고객의 월급을 훌쩍 넘는 오토바이 값을 매달 나눠낼 수 있 하는 금융상품도 필요했다. 차량과 배터리의 상태를 관리하고, 실제로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였는지 증명할 데이터도 있어야 했다.
어느 고리 하나만 끊어져도 이 사업은 성공할 수 없었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
그 고리들을 하나씩 잇는 데는 많은 자금과 손이 필요했다. 캄보디아라는 낯선 나라에 선뜻 돈을 대겠다는 곳은 없었다. 그때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것은 우리나라의 여러 공공기관이었다.
가장 먼저 부딪친 벽은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전기 오토바이는 느리고 오래 못 쓰는 물건이었다. 그 생각부터 바꿔야 했다.
한국에너지공단의 도움으로 시엠립에 팝플 스테이션이라는 문화복합공간을 열었다. 태양광으로 전기 오토바이를 충전하는 곳이자,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을 배우고 한국 문화를 함께 나누는 곳이다. 그리고 전기 오토바이를 타고 앙코르와트를 도는 투어 상품을 만들었다. 내가 맑은 공기를 마셨던 바로 그 길을 이제 전기 오토바이가 달린다.
생산 기반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포용적 비즈니스 프로그램(IBS) 사업으로 마련했다. 캄보디아에 조립공장을 세우고, 그 공장을 캄보디아 청년들로 채웠다. 우리가 직접 기술을 가르쳐 채용했다. 우리가 이 나라에 남기고 싶은 것은 오토바이만이 아니었다. 배터리 교환소는 도심과 상가, 주거지에 맞춰 여러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하나 더,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이 있었다. 수명이 다한 배터리는 어디로 가는가. 공기를 맑게 하겠다고 들어온 회사가 땅에 폐배터리를 남긴다면 그것은 또 다른 오염일 뿐이다. 그래서 배터리를 다시 쓰는 방법을 만들고, 재활용 공장을 세웠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으려면 데이터를 관리할 플랫폼이 필요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도움으로 차량과 배터리, 교환 기록과 감축량을 관리하는 플랫폼을 만들 수 있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특허 문서 속에만 있던 디지털 측정·보고·검증(d-MRV) 체계가 비로소 현실이 됐다.
김성우 베리워즈 대표와 임직원들이 '2025 베리워즈 NZ 제너레이션 트라이브 운영계획' 발표 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베리워즈)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대학원 시절 논문 주제였던 '전과정(Life Cycle)'이 이제 내 회사의 책임 범위가 되어 있었다. 원료에서 생산, 사용, 폐기까지. 젊은 날 연구실에서 찍은 점 하나가 수십 년을 돌아 캄보디아의 도로 위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