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직·내·괴' 제도의 이면
2026-11-05 06:00:00 ㅣ 2026-11-05 06:00:00
1만6373건. 지난해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건수입니다. 2021년(7774건)보다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2019년 7월 제도 시행 후 신고는 매년 증가세입니다. 그런데도 현장과 각종 연구에선 제도가 제대로 정착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제도를 악용하는, 이른바 '을질' 논란 탓입니다.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이 <을의 가면>, <가해자가 아니라는 착각> 등의 책을 잇따라 펴낸 것도 이런 문제의식에서입니다. 수년간 갑질과 직·내·괴 사례 등을 연구하고 상담하면서 뜻밖의 현실과 마주했다고 합니다. 업무상 잘못을 지적받고도 '기분이 나빴으니까 직·내·괴 성립'이라고 주장하고, 없던 일을 꾸며내거나 사실을 부풀려 신고하는 행위가 심각한 수준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직·내·괴 여부는 신고인의 감정이 아니라 객관적 기준으로 가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도 비슷한 잣대를 들이댑니다. 반복된 지시 불이행과 늑장 보고를 지적하다가 고성으로 질책한 건 괴롭힘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근로자의 행위가 폭언을 유발한 경우는 직·내·괴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나왔습니다. 
 
연구 사례를 보면 을질엔 공통점이 드러난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먼저 신고인의 재직 기간은 ‘1년 미만’이 90%에 달했습니다. 업무 미숙과 지시 불이행 등으로 갈등하다 조기 퇴사한 뒤 직·내·괴로 신고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분석입니다. △합의금·보상금 △고용계약 △유리한 인사평가 △서면·공개사과 요구 등 보상을 바라는 경향도 두드러집니다. 동일한 내용을 사업장과 노동청, 언론, 사법기관 등에 거듭 신고·제보하는 것도 공통된 모습입니다. 신고를 통해 상대방을 굴복시켰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문제는 법이 을질을 걸러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신고가 잘못된 걸로 드러나도 신고인을 제재할 조항은 없지만, 피신고인은 사실관계가 확인되기도 전에 가해자로 취급됩니다. 사업장 역시 조사 전문성이 부족하거나, 서둘러 절차를 마치려는 편의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명백한 괴롭힘이 확인되지 않았다면 신고인에게 끌려가지 말고 사건을 종결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안일한 대처는 사업장에 큰 상처를 남깁니다. 연구 사례에 따르면, 가해자로 지목된 근로자 중 절반 이상은 퇴사했거나 이직을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회사에 충실했던 직원이 마음의 문을 닫고 조직을 등진 셈입니다. 남은 사람들도 ‘언제든 가해자로 지목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위축, 해야 할 지적을 삼키거나 필요한 지시조차 망설이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반복해 쌓인 침묵은 조직의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고, 실제 직·내·괴 피해자들마저 신고를 주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겁니다. 
 
해외는 어떨까요. 호주는 정당한 경영상 조치를 직·내·괴에서 제외했습니다. 노동청 등 외부 기관은 재직자의 신고만 받고, 접수 땐 수수료까지 내도록 했습니다. 아일랜드는 발생 6개월 이내 사건만 신고받고, 잘못된 신고로 밝혀질 경우 신고인을 벌하는 규정도 뒀습니다. 벨기에는 사업장 내부 절차를 패싱하고, 외부 기관에 신고하면 피해자로서의 권리를 제한합니다.
 
물론 직·내·괴 금지 제도가 일터를 긍정적으로 바꿔온 공은 분명합니다. 위계질서가 유독 강한 한국 직장에선 직·내·괴가 현재진행형이고, 회사의 무성의한 대처로 구제받지 못한 피해자도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을질은 존재하고,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게 현장과 연구에서의 진단입니다. 피해자는 돕고, 가해자로 몰린 사람도 구제할 법 개선과 제도 운용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최병호 탐사보도 선임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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