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사령관이 들고 나온 '뒤집힌 지도'의 역설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북한 지정학적 중요성도 부각
2025-11-25 06:00:00 2025-11-25 06:00:00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화제다. 브런슨 사령관은 지난 17일 '동쪽이 위인 지도: 인도·태평양의 숨겨진 전략적 이점을 드러내다(The East-Up Map: Revealing Hidden Strategic Advantages in the Indo-Pacific)'라는 제목의 글을 주한미군 홈페이지에 올렸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 5월8일 경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열린 국방부 기자간담회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브런슨 사령관은 '동쪽이 위를 향하도록 뒤집힌 지도'를 소개하면서 "이 지도가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통찰은 한국, 일본, 필리핀을 연결하는 전략적 삼각형의 존재"라며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세 파트너 국가를 각각 삼각형의 꼭짓점으로 보면 이들의 집단적 잠재력은 분명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략적 삼각 개념은 전통적인 양자 동맹 구조를 넘어 3자의 계획 논의를 위한 유용한 협력 틀을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뒤집힌 지도 관점에서 보면 한국, 일본, 필리핀은 세 개의 분리된 양자 관계가 아니라 하나의 연결된 네트워크로 보인다"며 "한국은 중심부에서의 깊이, 일본은 기술 우위와 해양 도달 범위, 필리핀은 남쪽 해양 축의 접근성을 제공하며, 각자 고유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아시아 전반을 개괄한 그는 확실하게 한국과 주한미군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의 역할은 자연스러운 전략적 중심축(pivot)"이라며 "(주한미군이 주둔한 경기도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는 평양으로부터 158마일(약 254㎞), 베이징으로부터 612마일(약 985㎞),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500마일(약 805㎞) 떨어져 있다"는 대목이 바로 그렇다. 718마일(1155㎞) 거리인 도쿄보다 베이징과 블라디보스토크가 더 가깝다. 그는 이어 "이는 한반도가 러시아 동쪽뿐 아니라 중국 북부 지역까지 견제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베이징의 관점에서 보면 전략적 가치는 더 분명해진다"며 예컨대 "베이징 입장에선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는 원거리 위협이 아니라 가까운 위협"이라고도 했다. 
 
한국군 전작권 행사하는 브런슨, '북한 억지' 한마디 없고 '전략적 유연성'만 강조
 
"인도·태평양 전략의 주춧돌인 제1도련선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에 이미 주둔해 있는 (주한미군) 전력은 (전시) 증원이 필요한 원거리 자산이 아니라 위기나 유사시에 미국이 돌파해야 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접근 거부 영역(bubble perimeter) 안에 이미 주둔한 군대란 점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중국이 대미 방어선으로 설정한 '제1도련선'은 일본열도 남단에서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을 연결하는 근해 방어선이다. 브런슨 사령관은 주한 미군이 그 제1도련선 안에 이미 배치돼 있는 부대임을 강조한 것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연합사령관과 유엔(UN) 군사령관을 겸한다. 그에 더해 '주한미군 선임장교'로서 때때로 미국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을 대리해 한국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을 맞상대하기도 한다. 
 
그런 인물이 한반도와 주한미군이 갖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와 전략적 중요성에 대해 피력했으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그는 지난해 12월 주한미군사령관을 맡기 직전까지 미 육군의 인도·태평양 지역 주력 부대로, 유사시 한반도에 전개되는 증원 전력을 관할하는 1군단장이었다. 인도·태평양 지역 상황, 한국군과의 연합 작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한 '뒤집힌 지도' 글에는 북한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고, 오직 중국과 러시아에만 집중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전통적인 임무로 인식되는 '북한에 대한 억지'는 제쳐놓고,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활용하는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 것이다. 그가 2만8500명 규모의 주한미군 수장이자, 유사시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한미연합사령관이 쓴 글이라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는 줄기차게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해 왔다. 지난 5월 미 육군협회 태평양지상군 심포지엄 연설에서 한국의 위치가 "베이징과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라면서 "일본과 중국 본토 사이에 떠 있는 섬이나 고정된 항공모함 같은 존재"라고 했다. 한국의 위치가 "북한·러시아·중국 지도부의 셈법을 바꾸고 미국에는 선택지를 준다"는 것이었다. 
 
이어 8월에 한국 국방부 출입기자들과 한 간담회에서도 "일본, 한국, 필리핀을 삼각형으로 이으면 그 지역 내에서 세계 교역량의 52%가 이동한다"면서 "역내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상황에 맞게 국가들이 반응해야 한다는 호소가 있을 것이란 점을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상황이 이 지역에 고립·국한될 것이라 믿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군사령관이 지난 17일 공개한 '뒤집힌 지도'. (사진=연합뉴스)
 
'한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김정은에게는 반가운 뉴스
 
이전 주한미군사령관들 중에서 한국 기자들과 대규모 기자간담회를 하고, 전략 방침을 담은 문건까지 발표한 전례는 거의 없다. 이처럼 미국이 공을 들이고 있는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한 발 더 확대됐다. 양측은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2006년 이래의 관련 양해를 확인한다"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지만 "양국은 북한을 포함해 동맹에 대한 모든 역내의 위협에 대한 미국의 재래식 억제 태세를 강화할 것"이라고 합의했다. 지난해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합의한 '북한의 침략' 대목이 '북한을 포함한 모든 역내 위협'으로 강도를 높인 것이다. 
 
"주한미군과 한국이 동북아 변방이 아니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이라는 이 지도에는 묘한 역설이 숨어있다.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 체제로 명백히 전환되고 다극화의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2021년 12월 조선노동당 전원회의)며, 러·우 전쟁까지 참전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주한미군 사령관의 이 '고백'이 얼마나 반가울까. 게다가 서울과 평택에서 눈을 한 뼘만 내리면 바로 평양 아닌가. 평양-도쿄 간 거리는1280㎞다. 평양에서 캠프 험프리스까지는 255㎞에 불과하고, 미국, 일본과 갈등하고 있는 중국, 러시아에 북한의 지정학 중요성과 전략적 가치를 강조해주는 것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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