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호반그룹이
한진칼(180640) 지분을 추가 매집하면서 한진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긴장감이 다시 고조되고 있습니다. 외국인 적대적 인수합병(M&A)이 법적으로 차단된 기간산업에서 대주주의 독주를 견제하는 ‘메기효과’로 비칠 수 있지만, 펀더멘털을 벗어난 주가 급등 뒤 차익만 챙겨 빠지는 ‘폭탄 돌리기’가 재연될 우려가 교차합니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진칼은 경영권 분쟁 조짐으로 전날까지 이틀 새 46% 급등한 데 이어 이날도 장중 6%대 강세를 보였습니다. 한진칼은 항공사업법 등에 따라 외국인의 적대적 인수 시도가 사실상 막혀 있습니다. 이러한 보호 장치는 역설적으로 경영권 경쟁에 따른 프리미엄을 차단하고 지배주주 중심의 거버넌스를 고착화해 주가 저평가를 부르는 요인으로 꼽힙니다. 그러나 외풍이 막힌 탓에 만년 저평가에 머물러 있던 이 종목을 토종 자본인 호반이 흔들기 시작하면서, 대주주가 사재를 털어 지분을 매입하고 일반주주와 우호 세력 관리에 나서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급격한 주가 상승은 거품 우려를 낳습니다. 당장 오는 12월16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마무리되면 캐스팅보트인 산업은행(지분율 10.58%)의 투자 회수(엑시트) 여부가 변수로 떠오릅니다. 현재는 조원태 회장 측이 델타항공(14.9%), 산업은행(10.58%), LX판토스(3.8%) 등 우호 지분을 합쳐 50% 이상을 확보하고 있으나, 합병 이후 산은 물량이 시장에 풀릴 경우 경영권 구도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앞두고 추가 매집에 나선 호반이 주가의 단기 변동성을 높이는 양상입니다.
이처럼 기업가치를 이탈한 과열 양상 속에서는 일반주주들이 ‘폭탄 돌리기’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옵니다. 실질 유통 주식 물량이 20% 수준에 불과한 품절주 특성 탓에 주가가 펀더멘털을 과도하게 웃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호반그룹이 폭등한 주가를 감수하며 전면전을 이어갈 유인이 크지 않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호반은 과거 금호산업 인수전에서도 본입찰 직전 보유 지분을 장내에 전량 매도해 수백억 원의 차익을 남기고 빠진 전력이 있습니다. 지난해 LS 지분 단기 매매로도 1000억원 넘는 차익을 거둔 것이 추정됩니다. 특히 한진칼 지분을 20% 이상 모으면서도 ‘단순 투자’ 목적 공시를 유지해 처분 제한 등 규제를 비켜 가고 있어, 비교적 수월하게 차익실현에 나설 수 있는 상태입니다.
iM증권에 따르면 호반그룹 주요 계열사의 합산 순현금은 약 1조230억원(2025년 말 기준) 수준인 반면, 그동안 평균 매수 단가 6만1054원에 사들인 한진칼 지분(총 매수액 1조400억원)의 평가차익은 이미 1조5700억원에 달합니다. 배세호 iM증권 연구원은 “한진칼의 시가총액은 11조7000억원으로 SoTP(사업별 가치합산) 밸류에이션 시 적정 시가총액 3조3000억원 대비 +250%의 프리미엄을 받고 있다”며 “이틀간의 과도한 주가 상승은 조원태 회장 측과 호반그룹 두 주주 모두에게 추가 지분 확보의 비용 부담을 높이며, 장내 매수를 가정할 때 1%포인트의 추가 지분 확보를 위해서 1170억원이 필요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번 한진칼 사례는 소액주주 보호 장치로 거론되는 ‘의무공개매수제’의 양면성을 동시에 부각시킵니다. 정치권에서 추진 중인 의무공개매수제는 지분 25% 이상을 확보해 최대주주가 되는 경우 ‘50%+1주’까지 잔여 주식을 의무적으로 사들이도록 강제하는 제도입니다. 만약 이 제도가 이미 시행 중이었다면 호반은 향후 산은 지분(10.58%) 인수를 시도하거나 25% 선을 넘기는 순간 수조 원의 공개매수 자금을 투입해야 하므로 아예 경영권 위협조차 시도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풀이됩니다.
의무공개매수제가 도입됐더라면 지금 같은 단기 주가 급등과 과열도 없었겠지만, 동시에 대주주의 안주를 깨는 자본시장의 긴장감 자체가 사라지고 M&A 시장이 위축될 것이란 부작용 우려도 방증하는 셈입니다. 전문가들은 대량보유 보고(5% 룰) 시 ‘단순투자’ 인정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보유 목적 변경 시 매각 제한 기간(냉각기간)을 강화해 기습적인 장내 폭탄 던지기를 막는 핀셋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호반그룹 사옥. 사진=호반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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